Another
[메딕헤비] Liebe
공룡떡
2023. 6. 15. 18:40
[메딕헤비] Liebe
:사랑
아, 사랑. 그것은 무엇인가.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을 하며 메딕은 제 실험실을 거닐었다.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그것은 아주 생소하지만 익숙하며, 귀찮지만 아름다운 것이다. 또한 갓 피를 흘리기 시작한 사춘기 계집애들의 웃음소리와도 같으나 죽어가는 노인의 숨결과도 같다'고 노래할 수 있을까. 퍽 시적이고 낭만적인 정신병이라고 생각하며 메딕은 후후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것을 부정하지 못했는데, 실은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에 조금 더 가까웠다. 비록 그가 사랑을 '차갑든 뜨겁든, 저를 보든 보지 않든,대답을 하든 하지 않든 한결같은 애정을 가득 담아 상대에게 보내는 것'으로 정의내렸다곤 하지만 사랑이 어느 쪽이든 가슴을 두근대게 만드는 것임에는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요근래 사랑을 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의사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였던 뇌의 화학작용을 연구하는 실험이 아니라 정말로 '사랑'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첫눈에 반했다거나, 세상이 흔들리고 종소리가 들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상상하면 저 발끝서부터 저릿저릿해 오는 것은 역시 사랑일 터였다. 이렇게 손발이 곱아들고 머리카락마저 베베 꼬일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 그에게는 새삼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후후, 그는 작게 몸을 떤 뒤에 입을 둥글게 벌려 그를 입안에서 천천히 되뇌였다.
헤-비. 헤비. 헤비웨폰가이.
본명도 아니건만 어찌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던지 메딕은 제가 그 이름을 듣던 날 헤비를 납치하지 않았던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물론 그 거대한 덩치로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는 배가 아프다고 말하는 모습이 심장에 쐐기를 박긴 했지만 계기는 아무래도 좋다고 메딕은 생각했다. 어찌되었든 그는 아주 귀여웠으며 또 그의 취향에 꼭 들어맞았다. 단순히 상한 스테이크를 먹어 생긴 복통이었으나 아주 큰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내일 다시 오라고 그에게 엄포를 놨을 정도였다. 그는 가슴 속부터 간질거리는 감각에 잠식당하는 기분이었다. 헤비가 제 진료실을 떠난 후에 그가 창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한 번도 부르짖어 본 일이 없는 신의 이름을 외치기까지 했을 정도로 그는 헤비에게 푹 빠져있었다. 물론 그 기도의 내용이 그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것이나 그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비는 예의 것들은 아니었지만 어설프게 쥔 그의 손은 다양한 감정과 감각의 홍수로 전율하고 있었다. 메딕은 그날의 기억을 다시 되새기며 실험도구가 늘어져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해가 지고 찾아오는 밤은 온전히 그의 시간이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개인병원의 문을 닫은 그가 한번 지하실로 내려오면 폭탄이 터져도 모를 정도로 집중하는 때였으며, 물론 방해받는 것도 극도로 싫어하는 때였다. 그런 메딕이었기에 알코올이 떨어져 윗층으로 올라간 그 시간에, 헤비가 잠긴 문을 쾅쾅 두들겨 댄 것은 정말 신의 가호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사실 메딕은 무시하려고 했고 발은 이미 계단의 1/3을 내려간 참이었다. 보통이면 포기할 만도 하건만 헤비는 끈질기게 부수기라도 할듯 문을 때려댔고 결국 포기한 쪽은 메딕이었다. 안전고리를 걸어놓고 반쯤 문을 연 메딕은 제 키를 훌쩍 넘는 거구의 남자를 보곤 애써 열어주었던 문을 닫아버릴 뻔 했었다. 그러나 이내 헤비는 특유의 러시아 억양이 섞인 목소리로 배가 아프다며 애원하기 시작했고 메딕은 품안의 작은 리볼버를 만져 확인하고는 문을 열어줄 수 밖에 없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는 식은땀을 흘려대는 그는 통증에 몸을 잔뜩 웅크리곤 다짜고짜 배가 아프다고 했다. 제가 올려다보아야만 눈을 마주칠 수 있는 거대한 스킨헤드의 러시아인이 제 눈앞에서 바들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머릿속에 얇게 자리잡은 이성의 끈이 끊어지려는 것을 막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결국엔 끊어졌지만.' 그는 생각했다.
메딕은 다시 청진기를 대충 말아 주머니에 꽂아넣고는 그를 향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기처럼 울어대지 말고 우선 이름을 말해보게."
"...그게 치료에 관련이 있는거요? 난 배가, 아주, 아프단 말이야."
"아주 심각한 병에 걸려서 오늘 내일하는 환자가 이름도 없이 죽어 나를 곤란케 하고 싶지는 않으니 닥치고 이름을 말해주었으면 좋겠군. 그렇게 멍청이처럼 입을 다물었다간 장기가 온통 끊어질지도 모르니 말일세."
헤비가 기겁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거의 랩을 하듯 '내 이름은 헤비야, 의사양반.'이라고 말했고 메딕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 이름은 아니었으나 메딕은 그저 그를 부를 호칭이 필요한 것 뿐이었으므로. 그는 효과가 짧은 진통제를 처방해주었고 엄청난 병이기 때문에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병원에 들르라는 말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방문을 해야하냐는 그의 질문에 메딕은 약간 당황했으나 결국엔 약간의 고민 끝에 검사가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환자가 없는 시간에 와야한다는 변명을 생각해냈고, 그것은 겁먹은 헤비가 믿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이유였다.
메딕은 그날의 기억이 마치 영화라도 재생한듯 생생하다는 사실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희는 운명같았다.
"우리는 운명이지, 헤비. 그렇지 않나? 그날 자네가 상한 스테이크를 먹지 않았다면, 그리고 급하게 찾은 병원이 내 병원이 아니었다면. 아아, 정말 상상도 하고 싶지 않군. 물론 자네도 그렇겠지."
그는 피가 묻은 장갑을 벗어 아무렇게나 던지고 앞섶에 손을 문질렀다. 헤비는 고요하게 철제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아, 자는 모습도 사랑스럽군."
메딕은 침대의 모서리에 걸터앉아 그의 감긴 눈꺼풀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헤비를 내려다보다가 뺨에 짧게 입을 맞추고 귓가에 키스했다. 그리고는 헤비의 차가운 귓가에 뜨거운 사랑고백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제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며,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구구절절한 고백이었다. 메딕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사랑은 '차갑든 뜨겁든, 저를 보든 보지 않든,대답을 하든 하지 않든 한결같은 애정을 가득 담아 상대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영원히 잠들어있을 제 연인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결국엔 끊어졌지만.' 그는 생각했다.
메딕은 다시 청진기를 대충 말아 주머니에 꽂아넣고는 그를 향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기처럼 울어대지 말고 우선 이름을 말해보게."
"...그게 치료에 관련이 있는거요? 난 배가, 아주, 아프단 말이야."
"아주 심각한 병에 걸려서 오늘 내일하는 환자가 이름도 없이 죽어 나를 곤란케 하고 싶지는 않으니 닥치고 이름을 말해주었으면 좋겠군. 그렇게 멍청이처럼 입을 다물었다간 장기가 온통 끊어질지도 모르니 말일세."
헤비가 기겁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거의 랩을 하듯 '내 이름은 헤비야, 의사양반.'이라고 말했고 메딕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 이름은 아니었으나 메딕은 그저 그를 부를 호칭이 필요한 것 뿐이었으므로. 그는 효과가 짧은 진통제를 처방해주었고 엄청난 병이기 때문에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병원에 들르라는 말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방문을 해야하냐는 그의 질문에 메딕은 약간 당황했으나 결국엔 약간의 고민 끝에 검사가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환자가 없는 시간에 와야한다는 변명을 생각해냈고, 그것은 겁먹은 헤비가 믿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이유였다.
메딕은 그날의 기억이 마치 영화라도 재생한듯 생생하다는 사실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희는 운명같았다.
"우리는 운명이지, 헤비. 그렇지 않나? 그날 자네가 상한 스테이크를 먹지 않았다면, 그리고 급하게 찾은 병원이 내 병원이 아니었다면. 아아, 정말 상상도 하고 싶지 않군. 물론 자네도 그렇겠지."
그는 피가 묻은 장갑을 벗어 아무렇게나 던지고 앞섶에 손을 문질렀다. 헤비는 고요하게 철제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아, 자는 모습도 사랑스럽군."
메딕은 침대의 모서리에 걸터앉아 그의 감긴 눈꺼풀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헤비를 내려다보다가 뺨에 짧게 입을 맞추고 귓가에 키스했다. 그리고는 헤비의 차가운 귓가에 뜨거운 사랑고백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제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며,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구구절절한 고백이었다. 메딕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사랑은 '차갑든 뜨겁든, 저를 보든 보지 않든,대답을 하든 하지 않든 한결같은 애정을 가득 담아 상대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영원히 잠들어있을 제 연인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