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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샹바레] Dors mon ange
공룡떡
2023. 6. 15. 18:41
[데샹바레] Dors mon ange
:잘 자요 내 천사 - 모차르트 오페라 락 중.
누구보다 하얗게 빛났던 그는 죽어서도 그랬다. 그 모습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아름다워서 히카르도에겐 관에 누운 그가 꼭 살아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때문에 히카르도는 그와 닮은 흰 국화꽃 속에 파묻힌 그를 자신도 모르게 끌어안을 뻔 했고, 제 체온보다 낮은 그의 뺨 온도를 느끼기 전까지 까미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히카르도에게 아주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히카르도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까미유가 죽는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까닭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제 머리에 총알이 박히거나 의문의 트럭이 저를 치고 지나가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그가 죽는다는 것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정도로, 까미유는 언제까지고 제 곁에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비록 '곁'의 정의가 예전보다 많이, 혹은 아주 많이 멀어졌다고 해도 히카르도에게는 영원히 까미유와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것이 진리이자 삶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랬던 까미유가 죽어 돌아왔다. 그것도 밤늦게 그의 집을 습격한 괴한의 칼에 맞아서 여즉 범인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믿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고, 심지어 히카르도는 눈물 한 방울조차 흘릴 수 없었다. 사실 감정이 마비된 것 같았다. 그를 죽인 놈을 찾아내 팔다리를 산산조각내고 눈을 뽑아내겠다는 그런 흔한 분노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는 제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꿈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가를 콕콕 찍어내는 여자들이며 큰 인재가 떠나 한없이 슬프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들까지, 까미유의 주변을 제외하고는 온통 검은빛 일색이라 더욱 그랬다.
히카르도는 조문객이 대부분 떠나갈 때까지 장례식이 치러진 성당의 구석에 기대어 서서 담배를 폈다. 담배를 즐기지는 않았으나 뭐라도 하지 않고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문 것이 어느새 한 갑을 비운 지 오래였다. 그는 연기를 머금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에게 하고 싶던 말이며 행동이며, 함께 꿈꾸었던 미래며 그가 자신에게 남기고 간 썩어빠진 몸뚱이까지 모든 것이 뒤섞인 상태였으나 히카르도는 시간을 들여 그것들을 하나 둘씩 풀어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제가 애를 써도 정리되는 것은 없을뿐더러 오히려 더 엉켜 들어갈 것이라는 걸, 그는 가슴이 아플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까미유는 너무나도 잔혹한 천사였다. 그는 알고 있을 터였다. 그가 죽은 후에 남겨질 '히카르도'라는 존재를, 혹여 그가 저에게서 멀어지던 그때 잊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죽음의 신이 제게 부여한 하나의 축복을 앗아갔을 적부터 이미 생각했을 것이었다. 요정을 믿는 어린아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처럼, '관계'라는 것의 끝에 대해 생각하기를 거부했던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저의 몸에 주삿바늘을 꽂아 넣은 그때 저에게 천사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히카르도는 벽에 기대었던 몸을 일으켜 세워 그의 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져 어두운 성당 안의 촛불에 그의 머리카락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히카르도와 처음 만났을 때의 그를 연상케 했다. 저무는 노을빛을 등지고 서서 제 이름을 물어보던 어린 날의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서도, 그의 머릿속엔 그 때의 기억이 마치 영화를 재생하듯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 히카르도는 숨을 삼켰다. 아아. 이제서야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끝까지 저에게 잔혹한 그는 하나의 상자를 만들고 싶었던 거였다. 제가 죽고 없어져도 영원히 저를 담아줄 상자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었다. 언젠가 기억까지 바스러져 기억해주는 사람 하나 없다 하더라도, 유일하게 모든 것을 잊지 않는, 잊을 수 없는 존재가 그에게는 필요한 거였다.
히카르도는 웃었다. 이를 드러내고 아주 즐겁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이내 거친 흐느낌으로 바뀌었으나 그에게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히카르도는 지금 자신이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은 죽을 수가 없었다. 그를 담은 대가로 죽음을 주어버린 저였다. 모든 것을 이해한 히카르도는 허리를 숙여 차갑게 굳은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는 잠시 숨을 들이켜 심호흡을 하고는 마지막으로 그의 모든 것을 담아 중얼거렸다.
잘 자요, 내 천사.
이제 히카르도는 떠나야 할 때였다. 마지막까지 완벽한 그의 모습을 눈에 담은 채로 히카르도는 발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