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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샹바레] A bitter memory

공룡떡 2023. 6. 15. 18:41

[데샹바레] A bitter memory
 :쓰디쓴 추억


 '천사의 집'이라는 낡은 간판을 단 고아원은 언제나 가난했으며 모든 것이 부족했다. 유일하게 넉넉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난 아이들 정도였다. 그리고 히카르도는, 그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미어터질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아이들은 성인 세 명도 들어가기 힘든 방 하나를 함께 쓰는 동기들이었는데, 그들은 단 한 번도 떨어져 본 일이 없었다. 가끔 나이가 차서 고아원을 떠나야 했던 아이들을 빼고는 모두가 서로에겐 당연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 사이의 끈끈한 우정이나 고아원을 향한 어떠한 감정같은,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순수한 감정 때문은 아니었다. 열악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장소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그들에게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이 아이들을 묶어주는 단 하나의 끈이었다. 다섯 살에서 열일곱 살까지 다양한 나잇대의 아이들 사이에 누워 히카르도는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 곱씹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좁아터진 아이들 틈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것밖엔 없었다. 

 연이어 터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 이를테면 흔들리는 경제상황이나 전쟁의 위협같은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불안한 나날은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거리로 내몰렸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부모가 저를 버린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였으리라.
 
 -우리는 이곳을 떠나야 해, 히카르도.
 흐릿하게 얼굴이 번진 갈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말했다.
 -우리 뒤를 꼭 쫓아오렴.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남자가 말했다.
  
 히카르도는 정말로 열심히, 짧은 다리를 움직이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기차역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히카르도, 빨리 와.
 -뭘 하는 거니, 우린 저 기차를 타야 해!

 어른들은 달렸다. 부딪히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욕설을 뒤로 한 그들이 이윽고 기차의 창가 앞에 비척이며 섰을 때, 겨우 숨을 몰아쉬며 그들의 코트 자락을 붙잡은 히카르도는 절망에 가득 찬 부모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던 여인은 불안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남편을 쳐다보았고 남자는 말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저희들은 끔찍하게도 운이 없다는 것을. 급변하는 세계에 적응할 능력도, 재력도, 인맥도 없을뿐더러 작은 희망조차도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어른 두 명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혼자가 되리라는 것을 아이 한 명이 알고 있었다. 그들의 주머니에 들은, 남은 돈을 모두 털어 산 기차표는 쓸 일이 없었다. 남자는 자신들을 밀치는 사람들에게서 히카르도를 감싸 안으며 들어 올렸다.

 -건강해야 한다.
 -사랑한다, 히카르도. 너를 사랑해.

 그들은 아이를 열린 창문으로 밀어 넣었다. 8살 생일을 하루 앞둔 히카르도는 차마 울지도, 팔다리를 휘저으며 부모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했다. 기차의 출발을 알리는 경적 소리가 울리고 서서히 멀어지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히카르도는 막연한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받아든 늙은 수녀의 손을 꼭 쥐었다. 그것만이 제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히카르도는 제 옆에 누운 까미유를 힐금 바라보았다. 언제나 가슴이 답답해지면 그를 찾곤 했는데, 그것은 이제 습관이 되어 어디를 가든 그가 제 옆에 없으면 도리어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히카르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과포화 상태의 방은 제가 가진 가장 오래된 기억을 연상케 했다. 시끄럽고 빽빽한 기차 안에서 밀려드는 토악질을 참아냈던 그때의 쓴 숨이 어디선가 밀려드는 것 같았으므로 그는 까미유의 손을 쥐었다. 조심스레 맞닿은 손가락을 몇 번 쓰다듬고는 깍지를 낄 동안 그는 혹여 까미유가 깨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남자끼리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거나, 껴안는 것은 이상한 행동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배웠으며 사람들의 인식 또한 그랬다. 그럼에도 히카르도는 가끔 까미유를 보면 손을 잡고 안아보고 싶은 기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는데 가끔은 타버릴 듯이 속이 아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피부는 빨갛게 달아올라서 감기에 걸린 것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까미유의 손을 쥔 제 손에서 축축하게 땀이 새어나왔다. 아이들의 숨소리와 새근대는 소리 외엔 고요해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방에 제 심장 소리가 쿵쾅대며 벽을 흔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몸은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15살의 히카르도는, 혹시 제가 이름 모를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먹은 것 없이 깡말라 키만 큰 저는 유난히 잔병치레가 잦았기 때문에 히카르도는 정말로 자신이 위험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유난히 죽는 것을 두려워했다.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에 마찬가지였다. 고아원에 자주 찾아오던 고양이가 차에 치인 채로 도로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며, 전염병이 돌아 아이들이 죽어 나갔을 때마다 그는 발작하듯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어 갔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구석에 앉아있는 것은 그가 고아원에 처음 왔을 때부터 존재하던 습관이었는데, 히카르도는 그 습관을 평생 가도 고치지 못할 줄 알았던 적이 있었다. 아마 까미유가 저를 잡아끌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히카르도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그가 깨지 않도록 손가락을 움직여 빼내었다. 

 "...히카르도?"

 덜컹-, 그의 심장 부근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헉, 하고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그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까미유였다. 
 
 "안자고 뭐해, 히카르도?"

 남들을 깨우지 않으려 목소리를 한껏 낮춘 까미유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까미유는 이제 몸을 반쯤 일으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히카르도는 우선 미친 듯이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어디 아프니? 반딧불을 빌려줄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나긋한 외모를 제외하고서라도 그의 곁을 맴도는 초록빛 반딧불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히카르도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히카르도?"
 "....미안, 잠이 안 와서 뒤척인다는 게 네 잠을 깨웠나 봐."
 "이번엔 또 어떤 게 너를 괴롭히는데?"

 까미유가 웃음기 띤 목소리로 상냥하게 물었다. 그러나 히카르도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손가락만 꼼질거리는 그를 바라보다가, 까미유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자, 우리."
 "뭐?"
 "목소리는 줄이고. 잠깐 나가서 바람 쐬고 오자. 여긴 너무 좁고 더워서 잠이 안 오는 걸지도 몰라."

 히카르도는 당황했다. 그는 일어서 자신의 손을 잡아당기는 까미유의 손을 끌어내리려고 노력했으나 그에게 까미유를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발이나 다리를 밟지 않게 까치발을 들고 조심스레 발을 내미는 까미유의 등을 쫓으며 히카르도는 입술을 물었다. 또다시 가슴께가 뜨거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삐걱이는 나무문을 최대한 조심스레 닫은 까미유의 표정은 16살의 소년이나 지을 수 있을 법한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 복도의 트인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까미유는 눈을 감고 속삭이듯 말했다.

 "시원하다. 그렇지 않아?"
 "그런 것 같군."
 "그런 것 같다니, 시원하면 시원한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래, 시원하다!"

 히카르도는 불안이 서린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취침 시간에 복도에 나와 돌아다니는 것은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것도 곧 고아원을 떠날 나이에 가까워진 저희 둘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까미유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히카르도가 이제 충분히 바깥 공기를 마신 것 같으니 다시 들어가자고 입을 열려는 때, 까미유는 다시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딜 가는 거야?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해."
 "식당에 가자. 거기라면 사람이 없을 거야."
 "뭐? 식당이라니...!"
 "조용한 곳에 가고 싶어.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 곳. 지금 시각이라면 식당에 아무도 없을 게 당연하잖아!"

 까미유는 발끝을 들고 소리를 죽여 달렸다. 계단을 내려가는 그들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땀방울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은 퍽 서늘했기에 히카르도는 가슴 한복판을 실이 콱 죄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의 손에 이끌리기가 무섭게 그들은 식당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분명히 잠겨있을 거야. 애써 속으로 삼킨 말이 무색하게도 식당의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자, 들어가자."
 까미유는, 정말이지 천사같이 웃었다. 닫힌 문 너머로 새어나오는 달빛을 등에 지고 그는 식당에 발을 디뎠다. 새벽의 고요함으로만 가득 찬 식당은 흩날리는 먼지가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까미유는 그런 식당의 내부를 한 번 훑어보고는 가운데 식탁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낡아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 테이블의 다리가 삐걱거렸다.

 "거봐, 아무도 없지?"
 까미유의 다리가 허공에서 흔들렸다. 가볍게 다리를 차며 까미유는 히카르도를 향해 손을 뻗고는 제 옆을 두어 번 내리쳤다. 히카르도는 문을 힐금이다 머뭇거리며 까미유의 옆에 다가섰다.

 "앉아봐."
 까미유는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히카르도를 응시했다.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마법에 걸릴 것만 같은 그 눈을 제 눈에 담으며 히카르도는 팔로 몸을 지탱하다 엉덩이를 내렸다. 유난히도 고요한 밤이었다. 히카르도는 고개를 숙인 채 그와 맞춰 발을 움직였다. 히카르도의 오른쪽 발이 허공에 머무를 때면 까미유의 왼쪽 발이 올라가고, 혹은 그 반대가 되는 식이었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먼저 입을 연 것은 히카르도였다.

 "사실은, 정말 잠이 오질 않았다."
 "알고 있어. 네가 뒤척이는 소리에 몇 번 잠이 깼었거든."
 "그리고 부모님 생각이 나서, 그래서...."

 까미유는 뜸을 들이는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히카르도는 까미유의 그런 점을 좋아했다.

 "네 손을 잡았다."
 "...내 손을?"
 "그래, 분명 나는 여기 있는데, 또다시 어디론가 아무도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리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네 손을 잡았다."
 "그래서 안심이 됐어?"
 "그건 아니었어."

 오히려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기만 했다. 히카르도는 새어나오려는 말을 입을 닫아 억눌렀다. 입술이 달싹이고 심장 부근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그는 침을 삼켰다. 제 속에 든 무엇인가가 내려가기를 기도하면서. 그러나 그것은 효과가 없었다. 히카르도는 두 손을 모아쥐고 고개를 젖혀 천장을 쳐다보았다. 서까래가 드러난 낮은 천장 사이사이 거미줄이 잔뜩 끼어있었다.

 "그러면. 어떤 기분이 들었는데?"

 히카르도는 고개를 돌려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저는 원래부터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꼭 그것 때문이 아니어도 지금 자신이 느끼는 것을 설명하기는 힘이 들었다. 히카르도는 그래서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는 의미와 말할 수 없다는 의미가 섞인 동작이었다. 그러나 까미유는 포기하지 않았다. 까미유는 손을 뻗어 그의 뺨에 대고는 다시 한 번 정확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무슨 생각이, 네 뺨을 이렇게 빨갛게 만들었는데?"

 히카르도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살갗이 확확 달아오르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의 손끝에서부터 아주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저는 죽을 병에 걸린 듯 했다.

 "나는 곧 죽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이름 모를 병에 걸린 게 분명해.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면, 이 기분을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수 없다. 히카르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까미유는 이내 그의 뺨을 엄지로 쓰다듬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가 병에 걸렸다면 분명 자신도 마찬가지겠지. 까미유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병은 자신의 반딧불로도 고칠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유일한 치료법이 있다면, 작년 크리스마스에 뚱뚱하고 기름진 백작이라고 하는 남자가 가져다준 동화책에서 보았던 것뿐일 터였다. 죽어가는 개구리 왕자에게 키스한 공주님의 마법. 저는 공주님이 아니고 그도 개구리 왕자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상관없다고, 까미유는 웃었다. 그는 양손으로 히카르도의 뺨을 가볍게 감쌌다. 바닥을 향한 그의 시선을 들어 올려서, 둘은 서로의 눈을 비춰보았다. 아직은 푸른빛을 띠고 있는 어설픈 보라색 눈과 갓 반짝이기 시작한 초록빛 눈이 얽혔다. 분명 많은 것들이 오고 갔다고 생각했으나 그걸 이해하기에 둘은 어렸고, 유일하게 잡아낸 한 가닥은 분명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히카르도와 까미유는 입술을 부딪쳤다. 그것은 아주 급하고 예의 없었으며 불분명한 행위였다. 누군가 왜 그런 행동을 했냐고 묻는다면 그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들조차 이해하지 못한 동작이었다. 그저 영양부족으로 부르튼 입술이 맞닿아 서로의 온기를 전하는 것뿐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마치 타오르는 용광로와도 같이 느껴졌다. 까미유와 히카르도의 머릿속에 든 것은 없었다. 하얀 종이에 붉은 물감 한 방울이 번져가듯 그들을 채우고 있던 모든 생각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단 하나였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가까이 가고 싶다.
 그들은 키스라는 행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입술만 대고 있다 떼곤 다시 한 번 서로의 눈을 응시한 둘은 마치 스파크가 튀듯 서로의 눈에서 어설픈 욕망을 읽었다. 히카르도는 물었다.
 
 "...왜?"
 "네 병을 고쳐주려고."

 그는 의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것은 옳은 행동이겠지. 이상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히카르도는 입을 다물었다. 까미유는 기억을 되짚어가고 있었다. 마을에 심부름을 나갔을 때, 항상 지나게 되는 불결하고 더러운 골목의 기억이었다. 붉은색의 조명이 찬란하도록 빛나는 그 골목은 언제나 크고 작은 말이 오가기 일쑤였다.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기엔 그의 나이는 적지 않았다. 까미유는 반쯤 기억에 의지한 채로 히카르도의 목덜미로 손을 움직였다. 목울대가 도드라지는 그의 목을 양손 가득 품고 까미유는 턱선을 따라 입술을 찍어 내렸다.

 아- , 히카르도의 입에서 숨이 터져 나왔다. 까미유는 몸을 떨었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그의 너덜거리는 셔츠 단추를 풀어냈다. 드러난 그의 상체는 깡말라 뼈가 드러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골격은 상당히 좋아서 한 살이 더 많은 까미유보다 튼튼해 보였다. 까미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불안하고 자신 없는 것은 당연했다. 히카르도의 몸이 움찔거리고 입에서 낮은 숨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까미유는 자신이 하는 행동을 더욱 이해할 수가 없어졌다. 그들은 사실, '사랑'이라는 개념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둘은 멈추지 않았다.

 "읏, 으..."
 "아, 아아... 헉.."

 자신들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둘은 서로의 것을 애무하고 있었다. 잔뜩 부풀어 올라 터질듯한 것을 비벼대며 까미유와 히카르도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히카르도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에겐 모든 것이 새로웠으며 두려웠다. 까미유는, 그에게 있어서 언제나 첫 번째였다. 히카르도가 경험한 모든 것은 까미유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가 처음이었다. 히카르도는 자신의 키스조차 그가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그의 가슴에서 무언가 토도독하고 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히카르도는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 느껴보는 타인의 손길은 지독하리만치 선연했다.
 까미유는 손가락을 들어 그의 굴곡 곳곳을 훑어갔다. 갈비뼈의 사이부터, 솟아오른 유두, 움푹한 쇄골, 배꼽까지 그의 몸 전부를 제 머리에 새길 듯이 꼼꼼하게 어루만졌다. 그럴수록 폭죽이 터지듯 히카르도의 잇새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까미유를 움직이는 것은 이제 거의 본능이 전부였다. 그는 벨트를 풀어내며 히카르도의 귓가에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히카르도, 허리 들어."


 히카르도는 숨을 헐떡였다. 핏줄이 돋아나도록 식탁의 모서리를 쥔 손이 바들거렸다. 그는 수치심과 죄책감, 두근거림과 같은 온갖 감정으로 뒤섞인 채 몸을 떨었다. 안돼, 그 한 마디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그 말은 결국 입안에서 분해되었을 뿐이었다. 그는 목을 젖혔다. 꽉 다문 잇새로 고통에 잠긴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요령 없이 억지로 쑤셔 넣은 구멍은 심하게 좁았고 뻑뻑했다. 까미유는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불규칙한 숨을 내뱉었다.

 "윽.... 까, 미유... "
 "하아, 하아, 히카르도... 읏..! 힘 빼...!"
 "젠장... 아파..."

 쾌락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섹스였다. 그들은 정말로 딱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 섹스란 게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거라면 어른들은 왜 이런 짓을 못해서 안달인 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럼에도 둘은 멈추지 않았다. 죽을 만큼 아팠고 불편했으나 까미유와 히카르도는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온기에 잔뜩 취해있었다. 까미유는 딱딱하게 굳을 정도로 힘이 들어간 그의 손을 잡아 폈다. 허공에서 몇 번이고 엉켜 드는 손가락은 꼭 서로를 갖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것 같았다.

 "아아, 윽.... 흐윽... 흐으응..."
 "히카르도, 히카르도... 으읏"
 
 까미유는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어쩐지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연거푸 들리는 자신의 이름에 히카르도는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떨리는 손이 까미유의 셔츠 자락을 움켜쥐었다. 닿을 듯 가까워진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그들은 다시금 무수한 감정의 흐름을 느꼈다. 그리고 둘은 아까보다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았다. 딱히 무엇이라고는 여전히 딱 짚어 말할 수는 없었으나 분명히 그랬다. 서로의 이름을 되뇌며 히카르도와 까미유는 사정했다.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까미유는 자신의 능력이 다른 사람을 낫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이 이렇게나 다행스러운 적이 없었다. 한차례 사정을 마치고 쓰러지듯 누워 숨을 고르던 히카르도가 심상치 않은 신음을 흘렸을 때에서야 까미유는 찢어지고 빨갛게 부어오른 구멍을 알아챘고, 공들여 제 반딧불을 부리고 나서야 부기가 가라앉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까미유는 미안하다는 말은 할 수 없었는데, 히카르도는 내심 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식탁에 나란히 누워 더러운 천장을 바라보면서 둘은 말을 아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히카르도였다.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까미유에게 질문했다.

 "난, 병에 걸린 게 아니지?"
 
 그 입에서 나온 질문이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까미유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 아마도. 우린 아마 사랑을 하나 봐."

 믿을 수 없게도. 까미유는 킥킥하고 웃은 뒤에 말을 덧붙였다.

 "혹시 네가 병에 걸렸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 내가 다 고쳐줄 테니까."
 "그럼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어야겠군. 그래야 네가 치료하기 쉬울 테니."
 "....그래.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줘, 히카르도."

 어지러울 정도로 고요한 식당에 누워, 둘은 새끼손가락을 꼬았다. 위태로운 언약을 곱씹으며 히카르도는 한 가지 문제점을 생각해 낼 수 있었는데, 그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기에 까미유는 걱정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히카르도? 하고 그의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히카르도는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삼키고 그에게 말했다. 

 "그래서... 뒤처리는 어떻게 하지?"
 
 정말이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실은, 아무래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을 공유하면서 둘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이제는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아까보다 더욱 삐걱이는 테이블의 다리를 제외한다면 모든 것은 완벽했다. 서늘한 바람이 그들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