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딕헤비] Blickrichtung / For.밉둥
For.밉둥
[메딕헤비] Blickrichtung
:시선(視線)
#1.
헤비는 요근래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단순히 자는 일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요즘 들어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는데, 심지어는 샌드비치조차도 입에 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시작은 사소했다.
아무도 없는 방임에도 누군가 있는듯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것과 같은, 마치 그런 기분이었다. 그저 픽 웃어넘기면 잊어버리고 마는 일인 데다 그는 상당히 둔한 편에 속해있었으므로,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일을 제외하고는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러했기에 헤비가 자신의 일상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리가 무수히 달린 벌레 같은 것이 목덜미를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그를 잠식하고 있었다. 정말로 무언가가 제 몸에 붙어 기어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형체 없는 '촉각'은 날이 갈수록 선연했다. 그러나 그를 가장 소름 끼치게 하는 것은 감각도 무엇도 아니었는데, 바로 '주위엔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의 존재는 혼자 있을 때나 여럿이 있을 때를 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꺼운 올가미가 목을 죄어오듯 스멀스멀 다가오는 그 느낌에 헤비는 몸을 파르르 떤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헤비는 자신에게 집요하게 따라붙는 존재를, 섬뜩하리만치 끈적하게 엉겨붙는 시선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2
챙그랑-!
바닥에 떨어진 포크를, 헤비는 그저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바들거리는 손엔 이미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또' 똑같은 상황이었다. 아무리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것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방을 바꿔보거나 동료들을 잡고 장난은 그만두라고 화를 내보기까지 했으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도리어 '그 시선'이 느껴지는 주기가 더 빨라졌을 뿐이었다. 그는 차마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저 김을 내는 수프 접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제는 '어떤 것도 마주치지 못하는' 상황이 더 무서웠다. 헤비는 그저 주먹을 쥐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점점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지직-, 하고 그의 귀에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젠 환청까지 들리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동료들의 시선조차 견디지 못하게 된 그가 방안에 자신을 가둔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3.
"으아아악!! 나와!! 나오라고!!"
헤비는 비명을 질렀다. 커다란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집어던지면서 헤비는 목이 찢어져라 고함을 쳤다. 손에 잡히는 것이 없자 그는 발로 벽을 차댔다. 그러나 귓가에 맴도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삑-삑-삑-삑-
거칠고 낮으며 규칙적으로 울리는 작은 소음, 헤비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귀를 틀어막고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토했다.
헉,삑-, 허억, 삑-, 헉, 삐익-.
헤비는 급하게 입을 막았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발끝부터 손끝까지 수십, 수백개의 시선이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저를 쳐다보다가 비웃고, 야유하고, 저를 훑어대는 것 같았다. 그만...! 미처 나오지 못한 말들은 입에서 욕지기와 함께 맴돌았다. 헤비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그것들은 어느새 그를 타고 올라와서, 목덜미를 쥐고, 힘을 주었다. 헤비는 목덜미를 잡아뜯었으나 잡히는 것은 없었다. 뭉툭하게 길어진 손톱이 그의 목을 잔뜩 할퀴어댔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피부가 벗겨져 피가 흐를 지경이었다. 손톱 끝에 벗겨진 살점이 핏방울과 함께 맺혔다. 산소가 부족한 시야는 흐렸고 깜빡였다.
이제는 한계야.
그의 머릿속에 단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을 때, 헤비는 정신을 잃었다.
#4.
"아, 귀엽기도 하지."
남자는 속삭였다. 원웨이 미러 너머의 쓰러진 헤비를 보며 그는 사랑스럽다는 듯 미소를 짓고는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남자는 유리를 손가락으로 토도독 두드리며 미소지었다. 심지어 옷마저 새하얀, 하얀색 외에는 보이지 않는 방에서 유일하게 색을 지닌 것이라곤 그의 눈동자와 살갗, 그리고 얼룩져 갈색으로 변한 핏자국 밖엔 없었으나 남자의 눈에는 그것이 한 폭의 예술품처럼 느껴졌다. 그는 어지러이 늘어선 버튼 중 하나를 눌렀다. 모서리마다 설치된 CCTV가 돌며 그를 찍었다. 벽에 설치된 화면 가득 헤비가 들어찼다. 메딕은 경외하는 표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작은 레버를 위로 올렸다. 벽마다 설치된 스피커에서 일정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헤비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남자는 흘러내린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곤 녹음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5.
'9월 19일, 오전 한 시 십 사 분. 실험은 35일째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피실험체 '헤비'의 몸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음은 이전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해왔으나 가장 직접적이고 큰 변화가 오늘에 들어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빛의 변화, 즉 조명의 깜빡임과 반복적인 소리의 재생은 피실험체의 환각을 유발했으나 이전까지의 반응과 다르게 피실험체는 환각과 자해행위를 보여주었다. 이전까지의 피실험체가 한 독백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8명의 '병과'라고 불리는 가상의 인물들과 함께 생활을 해왔으며 실험이 자행될수록 스스로를 '감금했다'고 생각하는 걸로 보인다. 피실험체는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과 환청을 듣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실험실 7의 환경에 의한 무의식적인 반사작용으로 추측된다. 피실험체는 무언가를 집어 던지고 파괴하는 폭력적인 행동을 보여주다가 목을 긁기 시작했으며, 이는 그가 호흡곤란으로 정신을 잃기 전까지 반복된 행동이다. 피실험체가 눈을 뜨기 전까지 지속적인 빛과 소음의 노출을 중지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추후 녹음을 통해 기재하도록 한다. 프로젝트 'Blickrichtung', 실험자 메딕. 19일 3차 녹음을 끝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