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크라울리X딘] Rat-a-Tat
공룡떡
2023. 6. 15. 18:46
*올 시즌 스포 존재합니다*
[크라울리X딘] Rat-a-Tat
:쾅쾅
#. 목적과 물음표. 내 영혼이 붉게 그을었을 때마저도 나는 '고민'이라는 것을 깊게 담아둔 적이 없었다. 거시기 크기를 키우고 싶다든가, 루시퍼를 죽이고 싶다든가 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 그런 깜찍한 골칫거리라면 난 두 팔을 벌려 내 머릿속을 온통 채운 고민을 꽉 껴안아줄 수도 있을 터였다.
나는, 내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내가 여지껏 밟아온 발자취를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근본적이고도 진지한 고민을 던지고 있었다. 크라울리- 지옥의 왕. 그래, 나는 내 존재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인간의 유한성이나 악마의 탄생에 대한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왜 악마들의 왕이 되었는가.'
허공에 뜬 달을 바라보며 잠을 자고 싶다고 느낀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악마들은 잠을 잘 수 없음에도.
#. 내 삶은 그저 인식과 흘려보냄의 연속이었다.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순간부터 악마였고, 유능한 세일즈맨이었으며, 또 어느 순간부터는 교차로의 왕이었다. 으레 살아 있는 존재들이 그렇듯 주어진 것에 의문을 가지는 성격은 아니었다. 꼭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함에도 나는 내 역할에 충실했다. 바라는 것을 달콤한 목소리로 제공하고, 시간이 지나면 받아야 할 것을 거두었다. 나타나고, 키스하고, 서명하고 사라져서는, 10년 후에 개들을 푸는 삶은 그저 아귀가 잘 들어맞는 톱니바퀴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목적이나 즐거움이 있을 리 없었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지옥에 끌려오는 영혼들이나 가십뿐이었다. 가십-! 중요한 것은 그거였다.
헌터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씹을 거리라고 한다면 '자그마한' 인간 형제 둘이라고 말할 수 있을 터였다. 비뚤게 돋아난 사랑니나, 손톱 밑에 박힌 가시만큼이나 보잘것없고 짜증 나는 인간들이겠지. 그렇게 생각할 때가 평화로웠다고 나는 말할 수 있다. 멍청한 사랑니가 루시퍼를 깨우고, 짜증 나는 가시가 뒷수습을 하려고 온 세상을 들쑤시고 다니는 동안,나는 처음으로 내 삶의 '위기'를 느꼈다. 굳이 영위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삶을 지키기 위해 나는 그 인간 형제를 찾았다.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었는가.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저 닥치고 세상의 멸망이 오기를 바랐을 거다. 아, 하지만 나의 행동을 후회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을 마주하는 순간 무언가가 내 머릿속에서 톡 터지는 것만 같았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콜트를 손에 쥐고 그들을 죽이려는 내 동족에게 총알을 박아넣었을 때, 나는 정말이지 흥분할 지경이었다. 어떤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작은 속삭임.
나는 유능한 세일즈맨이었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쪽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조금이라도 살고 싶다면 루시퍼를 택하는 쪽이 현명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인간 형제들을 택했다. 내가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였다. 누구보다 계산적이던 크라울리가! 오ㅡ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은 이겼다.
그렇게 나는 어느 순간 악마의 왕이 되어 있었다.
#. 사랑니와 가시는 흥미로웠다. 지나치게 흥미로워서 내게 독이 되리란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을 정도로. 특히 그중에서도 가시는, 아-. 그 초록색 눈! 빌어먹을 딘. 그는 정말이지 내게 성수보다도 해로웠다. 그리고 그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심리적인 스트레스였는데, 나는 믿을 수 없게도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장담할 수 있다. 그놈이 트렌치코트를 입은 똑같이 빌어먹을 천사를 불렀을 때 천사 놈이 응답한 것 보다, 내가 그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딘은, 나는 그가 그렇게나 헌신적으로 동생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일이나, 울먹이는 눈을 하고 카스티엘을 바라보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억울함으로 시작한 감정이었을 터다. 반지를 사용해서 루시퍼를 땅속에 처박아 버리는 방법을 내가 아니었으면 그 누가 알려주었겠느냐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었다. 그 외에도 내가 도와준 일들을 나열하자면... 블라 블라 블라. 입만 아플 거였다. 물론 그놈들은 헌터고, 악마를 보면 칼부터 빼드는 예의 없는 족속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내가 그들을 죽이려고 했던 일은, 그래 그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감히 나를? 나는 심지어 트렁크에 감금당하고, 인간의 피에 헤롱대기까지 했다는 것을 그들은 매번 잊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들은 내게서 필요한 것을 몽땅 가져갔다. 그들은 나를 뼛속까지 털어먹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내가 사는 목적을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난 자선사업가가 아니었다. 받아야 하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서라도 받아냈고, 거기에 적절한 정도보다 더 많이 받아내는 것은 악마들이 가진 성격이었다. 그런데 나는? 요 몇 년간의 내가 지나칠 정도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 틀린 점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난 거기에 일말의 불평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권력의 기반이 아주 튼튼하지는 않다고 해도, 내가 정말로 반드시 윈체스터 형제를 죽이고자 했다면 못할 일도 없었고, 분명히 그럴 기회는 충분했다. 죽이려는 시늉 정도는 해보았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엔 모두 어그러지고 말았다. 나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까닭에 대해 고민했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물론 내 인생이 지나치게 규격화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굳이 윈체스터 형제가 아니더라도 훨씬 안전하고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아서? 굳이 따지자면 이것이 가장 정답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아, 나는 딘을, 그 멍청한 형제 중에서도 멍청한 형에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나친 관심을 쏟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건 내 앞에서 부하 하나가 분신자살을 했을 때 확실해졌다.
#. 내가 더 이상 자연적인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 이래로 요즘처럼 자고 싶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나는 정말로 자고 싶었다. 하루의 단 몇 시간 만이라도 그 얼굴을 잊을 수 있다면. 작디작은 액정 화면 너머의 왜곡된 형상을 보면서 그를 그리는 일이 즐거울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와 그의 거대한 동생이 언제라도 나를 소환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던 것이다. 그들의 비딱한 얼굴을 보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딘을 보고 싶었다. 그가 보고 싶으면서도 보기 싫었다. 이 얼마나 모순된 감정인가.
그러다 딘이 카인의 검을 얻으려고 했을 때, 나는 가슴이 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나는 정말로 내 귓가에서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을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아, 칼을 그의 품에 쥐여주면서도 나는 얼마나 불안했었나. 혹시나 정말로 그가 죽어버린다면. 딘이 천국으로 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옥에 떨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가 지옥에 오게 된다면 나는 권력을 남용해서 그를 내 곁에 앉히는 것을 넘어 그가 끝없는 줄에 서 있는 동안 라인 바깥에서 말동무를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 바람대로 그의 눈이 새까맣게 물들었을 때, 나는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와 함께 다니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했었나. 물론 그 행복이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와 무릎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아주 순수하고 소박한 즐거움이었다. 비록 그가 하는 것이라고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거나, 살해 욕구를 풀거나, 내가 하라고 하는 일을 정확하게 반대로 하는 것뿐이었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그 끝이 좋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딘이 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떠났을 때, 아주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꼭 실연당한 처녀처럼 그를 기다렸다. 그가 마셨던 잔의 우산 장식을 챙길 수도 있었다. 물론 정말로 챙기기는 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들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었다. 나는 그토록 불분명했던 내 삶의 이유가 맞춰지고 있다는 것에 집중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아주 우울하게도, 그 중심에는 딘 윈체스터가 있었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은 소리치고, 물건들을 집어던지고, 애꿎은 부하들의 목을 날려버리면서 부정할 수도 있었으나 그래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을 터였다. 요 며칠 사이 나는 꼭 멍청한 핸드폰 중독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아니면 사리 분별 못하는 어린애라도 되었든가. 'Not moose'. 핸드폰 화면이 반짝거리며 전화벨을 울리기를 나는 매일같이 기다렸다.
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는 빌어먹을 딘을 사랑하고 있다는 거였다.
#. 나는 악마의 왕이었고, 그 이전에 악마였고, 그 이전에 크라울리였다. 운명론따위 믿을 리 없는 사람이었고, 그건 최근까지도 변함없었다. 땅에 단단하게 매인 사슬 덩어리, 나는 그게 나인 줄로만 알았다. 내 삶의 모든 것이 딘을 향해 귀결되기 전까지는! 이제 나는 아주 자그마한 순간까지도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악마가 된 것도 모두 그를 만나기 위해서라는 낯 간지러운 생각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였다. 아, 딘. 어느새 창밖에는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내 아늑한 지옥의 방에서 달이 저물고 해가 뜰 때까지 나는 그를 생각하고 있는 거였다. 숨이 막히고 짜증이 치솟아 으르렁거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악마의 수면권을 보장받고 싶었다. 아주 잠시라도 그를 잊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나 나는 동시에 생각한다.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면 분명히 딘 윈체스터-, 그 애증의 얼굴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리는 함께 파이를 먹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운이 좋으면 그의 임팔라 조수석에 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나는 도피하고 싶었다. 거울에 대고 스스로에게 키스하면 계약을 팔아넘길 수 있을까 따위의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는 것도 지쳤으므로, 술이나 한잔 하고 싶었다.
창가 근처에 세워진 맥주병에는 장식용 우산이 꽂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