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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사이렌/사이먼X키어런] Let me in

 [사이렌/사이먼X키어런] Let me in
 
  *사이먼이 푸른 망각의 약을 먹었다는 설정입니다.*
  *시즌 2 스포 존재합니다*
  *인더플 전력 60분 주제 트라우마에 맞추어 써보았습니다.*


 사이먼은 꿈을 꾸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검은색 점, 너무 초라하고 보잘 것없어서 눈길조차 닿지 않는 점으로부터 시작하는 꿈이었다. 그러나 한번 눈길을 주었을 때, 이미 늦었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심연은 그를 끌어당겼다. 


 사이먼은 꿈을 꾸며 꿈을 바랐다. 항상 그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짙게 목을 조르던 감정들을 떨쳐낼 수 있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찬란한 미래로 시작하는 꿈을 꾸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는 저를 감싸는 어둠이 실은 그 꿈을 위한 하나의 장막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언제나 숨이 막혔던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갈구했던 미국에서의 삶을 지나 자신이 죽을 때까지도 그는 그렇게 믿었다. 삶은 의미 없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약해 너덜거리는 희망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또한 그는 알고 있었다. 헤엄을 치기도 전에 자신은 힘이 다해버렸다는 것을, 서늘할 정도로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자마자 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을 터였다.
 자신의 삶은 그저 호흡의 낭비였음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서, 그는 팔에 구멍을 내었다. 꿀럭꿀럭 토해내던 검은색의 덩어리들을 지워내고 싶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는 주삿바늘을 찔러 넣었다. 단 하나의 색이라도 잡아내고 싶어서 매달렸던 동아줄은 어찌 보면 성공적이었다. 눈앞을 일그러뜨리는 헤로인의 기운을 느끼면서 그는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하게 타오르는 석양을 볼 수 있었다. 그 황금빛 빛의 산란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는 마지막으로 그 모습을 머릿속에 새겨넣으며 꿈꾸었다. 다음 생에는 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황금빛이 제 것이 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빌었다. 맞이하는 죽음과 삶의 균형을 맞추면서 사이먼은 주삿바늘을 끝까지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가 눈을 떴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맞이한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컴컴한 흙더미의 무게였다. 그리고 그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음울할 정도로 탁한 백색의 병원이었다. 등의 살점이 도려져 나가고 뼈가 파이면서도 사이먼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감각의 일부가 차단당한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섬뜩할 정도의 고요함으로 가득 찬 실험실이었다. 자신이 필요하다는 그 말 한마디를 몇 번이고 곱씹으며 내어준 제 몸뚱어리는 벌벌 떨릴 정도로 아무 힘도 없었다. 믿음. 그 단어에 얽혀들어 간 수많은 어리석음을 뒤로 하고서라도 그는 붙잡고 싶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삶의 존재 이유를 갈구했다. 그 알량한 이유를 추구하려 매달렸던 기나긴 두려움을 가까스로 견뎌내었을 때, 그는 제 아버지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했듯 운명은 잔인하도록 그를 비웃어댔다. 사이먼 먼로. 그 끔찍하도록 처절한 이름은 저 자신을 집어삼킨 것으로 모자라서 제 어머니를 물어뜯고 아버지의 심장을 후벼냄으로써 그 크기를 키웠다는 것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을 때, 그는 두 번째 삶이 제게 찾아온 이유를 정의내렸다. 아마도 저는 영원히 고통받기 위해 태어났으리라. 운명을 거스르려는 생각은 무참히 꺾이어 나갔다. 그는 다짐했다. 운명이 제게 허락한 것이 영원한 고통의 침묵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그는 다짐했다. 멋대로 죽을 수조차 없다면 이 맹목적인 삶의 이유를 견뎌낼 거대한 지지대를 받아들일 것을, 저를 매달 십자가를 등에 질 것을 사이먼은 곱씹어냈다. 투명할 정도로 흐린 제 눈과 동일한 피를 나누는 동료들, 가족들, 그리고 스승. 발밑이 무너져내릴 정도의 무게를 지닌 그 칼을 던져낼 수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어느새 심연은 제 크기만큼 커져 있었다. 자신의 꿈은 거기서 끝이 날 것이 분명했을 터였다. 일그러진 빛조차 허락하지 않는 끈적한 것이 제 머리를, 손끝을, 모든 것을 감싸고 있었다. 아마 다시는 그 색을 눈에 담을 수 없겠지. 타버려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뜨거웠던 그 날의 석양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이먼은 손을 뻗었다. 그 빛의 끝이라도 제 손에 닿았으면 좋을 텐데, 그렇다면 저는 미련없이 심연 속에 몸을 던질 수 있을 거였다. 

 그 순간. 투명할 정도로 색이 빈 눈을 감아내리던 그때. 그는 정말로 몸이 녹아내릴 듯이 뜨거운 것이 제 손끝에 닿았다고,그렇게 생각했다. 분명 저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몸일 텐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모든 것을 뭉개버릴 정도로 강렬한 감각이어서, 그는 억지로 감았던 눈을 뜨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때 툭, 동아줄이 끊어져 내렸다.
그는 썩어버린 동아줄을 손에 쥔 채로 끝없이 끝없이 추락했다.
아, 나는 이번에도 침전하는구나. 헤엄치지 못한 채로 가라앉아 버리는구나. 
그러나 참 우스운 일이었다. 그는 어쩐지 웃음이 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미소라는 것을 지을 수 있었다. 어쩐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그 순간 그는 감았던 눈을 들어 올렸다.
  아. 아아.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황금빛 석양을 닮은 들녘이, 그의 눈앞에 너울대고 있었다. 


황금빛 들녘은 아름다운 바람 소리를 내었다.

 "잘 견뎌냈어, 잘 버텨냈어. 사이먼...당신은, 당신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야."

 키어런.
 키어, 키어런.

그는 그제서야 진실로 알아차렸다. 자신의 삶의 이유를.

 "....키어런."
 "그래, 나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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