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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사이먼X키어런] Merry Go Round

[사이렌/사이먼X키어런]Merry Go Round
 : 회전목마


 *인더플 시즌1,2 스포 있습니다*


 "당일치기 여행가요, 나랑 같이."

 ...오.
 예상치 못한 키어런의 말에 옅은 푸른빛을 띠는 사이먼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콘택트 렌즈를 끼지 않아 PDS 환자 특유의 빛을 내는 두 눈은 언제나 차가워 보였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어런은 사이먼의 시선에 몸을 흠칫 떨었다. 다른 의미로 두려움의 표현이었다. 키어런은 그의 입에서 '안돼'라는 말이 나올까 봐 걱정이 됐다. 에이미의 방갈로 문을 두드렸던 그 밤으로부터 정확히 닷새가 지났지만 마을회관에서 몇 번 스쳐 지나간 것 빼고는 대화가 전혀 없었던데다가, 우습게도 대화를 피한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이먼이 자신을 거절한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행동도 실수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그는 사이먼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결국엔 다시 그를 마주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게 되었지만서도... 역시 많이 늦었다는 생각을 그는 지우지 못했다.
 키어런은 초조하게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육체적인 통증과는 다른 감정적인 무엇은 시체가 되어도 여전히 견디기 힘들었고, 어느새 그는 무심코 제 손목을 매만지고 있었다. 사이먼은 그의 손목에 난 세로줄을 말없이 내려보다가 입을 반쯤 열었다.

"들어와."

겨울임에도 입김이 나지 않는 입에서 나지막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키어런은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고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마 굉장히 바보같이 보이겠지,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바보니까. 어쩌면 바보에 준하는 존재일 수도 있고.


 이런저런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가 무섭게 사이먼이 턱을 까닥였다. 재촉의 의미였다.

 그래, 우선은 들어가야 했다. 키어런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으나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다분히 '인간적'이고 '상징적'이었으며 '습관적'인 행동이었고, 사이먼은 그런 그의 행동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바보 같다고 생각했으나 키어런은 꼭 자신의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한밤중에 방갈로의 문을 두드리고 나서 처음 디뎌보는 현관이었다. 곧 풀릴 것 같은 자신의 신발 끈을 내려다보며 키어런은 자신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안도를 느꼈다. 만약 심장이 뛴다면 자신의 심장은 죄책감에 잔뜩 쪼그라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나 그의 대답을 기다렸으면서도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주워담고 싶은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에 침을 삼켰다. 마을 회관에서 마주쳐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갑자기 집에 찾아와선 여행을 가자고 하다니! 사이먼이 자신을 비웃고 있을게 분명했다. 문을 두드리는 용기를 내기 위해 삼십 분을 서 있었고 어떤 말을 꺼내면 좋을지 밤새도록 생각한 게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사이먼, 맞아요 정말 오랜만이지. 저번엔 내가... 실수를 하나 했었죠.' 키어런은 열심히 준비했던 말을 구겨 재생 중인 뇌 한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실수', 그 말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는 입을 벙긋이다 이내 포기하고 고개를 숙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는 별개로 역시 실수인 것이 분명했다.

 사이먼은 당돌하게 문을 두드려놓고선 손가락을 꼼질대며 바닥만 응시 중인 그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얼마나 바람을 맞았을까, 저물어가는 하늘 아래의 밀밭 같은 색을 띤 키어런의 머리카락이 잔뜩 엉켜 있었다. 그 모양새가 꼭 황금빛 구름 같아서 사이먼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머리카락에 손을 뻗었다. 손끝에 감각이 느껴질 리 없건만 그는 순간적으로 가늘고 투박한 부드러움이 손끝을 타고 올라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이먼?"
 
 사이먼은 저를 올려다보는 키어의 시선에 작게 몸을 떨었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내렸다. 그는 문득 그날 밤의 키어를 떠올렸다. 그는 잔뜩 상처받은 눈을 하고 있었고, 불안해 보였으며, 충동적이었다. 물론 그와의 키스가... 싫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분명 저는 그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부추긴 측면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짧은 입맞춤은 도리어 그를 숨어버리게 한 듯도 싶었다. 그날 이후 키어런은 눈에 띄게 저를 피해 다녔으니까. 그러나 사이먼은 천성이 급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느긋하게 키어런이 입을 여는 것을 기다렸다.
 키어런은 잠시금 눈을 감았다. 눈이 피곤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꼭 눈물을 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므로. 사이먼의 손은 굉장히 컸다. 단순히 인지적인 크기를 이르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그의 손이 좋았다. 사이먼이 제 머리카락을 흩뜨리는 것을 느끼며 키어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에게도 호흡이 필요하던가, 라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으나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난, 그러니까...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요."
 
 아 -. 키어는 제가 뱉은 말에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꼭 어린애의 투정 같은 말이었다. 의도한 것은 그게 아니었는데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저는 번번이 일을 망치는 경향이 있었다. 키어런의 뺨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사이먼은, 그 모습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이먼의 입꼬리가 비딱하게 비틀렸다.웃음을 참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으나 그 우스운 표정이 무색하게도 그의 입술은 결국 미소를 지었다. 항상 피곤한 듯 그늘진 눈매가 따스한 빛을 띠는 것을 바라보며 키어런은 급히 말을 이었다.
 
 "둘이서 함께요. 굳이 놀이공원이 아니어도 좋으니까 당신과 가고 싶어요. 하루 정도는요."
 
 사이먼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감쌌다. 키어는 제게 다가오는 그의 팔 깊숙이 난 자국들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상처, 어쩌면 그에게 자꾸만 발걸음이 향하는 것은 이것 때문일지도 몰랐다. 동질감이나 유대감 따위의 것들. 하지만 분명히 제가 느끼는 감정이 단순히 연민과 동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리라. 키어는 작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좋아. 너와 함께 회전목마에 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분명 즐거울 거야."
 
 이미 졸업해버린 회전목마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잊어버린 두근거림이 떠오를 것 같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