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준백기/대리백기]Necktie
:넥타이
-'Trial'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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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을 적당히 죄어오는 넥타이와 사무실의 공기. 백기는 그것들이 주는 묘한 긴장감을 즐겼다. 언제나 잘 다린 셔츠는 구김 없었고 넥타이의 모양새는 반듯했다. 그는 어그러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가 가진 멀끔함의 기준이 아주 재미없고 뻣뻣하도록 보편적인 것이라고 해도, 그 쭉 뻗은 길을 달릴 때만큼은 누구보다 앞서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거대한 삶의 레이스에서 저는 승리했다고, 원인터내셔널이라는 대기업의 사원증을 목에 건 날 백기는 생각했다. 정면만을 바라보는 것. 그는 제 곧은 시선을 사랑했다. 그 시선이 어느 순간 옆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깨달았을 때, 백기는 제가 뒤처졌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맛보았다. 직선 도로에 나타난 돌멩이. 제 옆자리의 상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도로 한가운데 위치한 돌멩이는 자동차를 위해 비키지 않는다. 무서울 것 없이 속도를 내며 달리던 자동차가 돌멩이에 미끄러져 절벽으로 추락하는 모양새, 장백기와 강해준의 관계는 딱 그런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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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기씨. 잠깐 저 좀 봅시다."
거의 명령에 가까운 말이었다. 상대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는, 감히 거절할 수도 없는 명백한 힘의 관계였다. 해준이 말을 마치고는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떼는 것에 백기는 작은 오한마저 느꼈다. 해준은 백기의 상사였고, 때문에 그 행동이 부당하게 여겨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백기의 반응은 언뜻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유난스러웠다. 단순히 그의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권력관계 따위의 이유는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흠칫 몸을 떨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해준에게 언성을 높여가며 따져대듯 물었던 날로부터, 강해준이 장백기에게 특별한 것을 '명령'하던 순간부터 백기는 그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이 두려워졌다. 백기는 곧 떨어져 내릴 것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자신이 한없이 무너져감을 느꼈다. 백기가 제 상사의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제 물건을 세우게 된 때로부터 그는 자신이 따낸 승리의 패배자였다. 그의 앞에서 자위 한번을 할 때마다 그에겐 적당한 보상이 주어졌다. 상냥하거나 친절한 태도가 따라붙는 것은 아니었다. 백기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저 일감 뿐이었다. 해준은 그에게 무리해서 무언가를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그가 제 앞에서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잘해줘야 할 필요를 해준은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그가 백기와 계약한 내용은 그가 그토록 원하던 일거리에 한정된 것이었으므로, 해준의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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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퇴근해 아무도 없는 탕비실이라는 점이었다. '벗어.' 차갑게 내리꽂히는 명령어를 들으며 백기는 넘어가지 않는 숨을 삼켰다. 텅 빈 사무실에서 상사에게 제가 자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배려나 행운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는 얼마 전 사람들이 가득 찬 건물의 옥상에서 바지를 내려야 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지워 내려고 애썼다. 그가 '일을 끝내기 전'에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은 것은 기적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리띠를 풀어내는 손길에는 잔뜩 머뭇거림이 묻어났다. 걱정이 덜어진 것과는 별개로 제가 하려는 일이 전혀 반길 정도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언제나 그의 심장 한복판을 쑤셔대고 짓눌러댔다. 해준은 파르르 떨리는 백기의 손가락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두 번 말하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이 신입은 몇 번이나 잊어버리는 것일까. 해준은 손을 들어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갑작스레 제 목을 조이는 넥타이의 감촉에 백기는 아, 하고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해준은 작게 으르렁거렸다.
"나는 당신에게 벗으라고 말했습니다."
백기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전보다 더 떨리는 손가락을 어떻게든 붙들며 허리띠를 풀어내고 지퍼를 내리는 것밖에 그에게 허용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기는 벽에 기대 저를 응시하는 해준의 시선을 받아내며 제 물건에 손을 대었다.
그에게 잡힌 넥타이엔 진한 구김이 가 있었다.
아무리 펴내어도 펴지지 않을 자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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