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nother

[사이렌/사이먼X키어런] This is halloween

[사이렌/사이먼X키어런]This is halloween

 *인더플 전력 60분 주제 This is halloween 에 맞추어 써보았습니다.*
 *시즌2 이후의 이야기를 가정하고 썼으되 임의적으로 주인공들을 등장시켰습니다.*

 유난히 조용한 축에 속하는 로튼이 떠들썩하다면 그건 얼마 되지 않는 특별한 날, 혹은 꽤나 기념할 만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12월의 마을 축제와 크리스마스가 그랬고, 신년 파티나 할로윈이 그랬다.
 키어런은 옷장 문을 열어 그 한 켠에 자리 잡은 자신의 낡은 할로윈 코스튬을 보았다. 어릴 적 입던 수퍼히어로 코스튬은 당연스레 맞지 않았지만, 그건 제가 더 이상 옷을 입을 수 없었던 때에도 쭉 옷장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닥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은 키어런을 자연스레 또래 친구들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지만 할로윈 때만은 달랐다. 한 손에 사탕 바구니를 들고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집의 대문을 나서면, 그때만큼은 그 누구도 차별 없이 끼리끼리 모여선 사탕을 얻어먹을 수 있는 때였다. 아마 그 때문일 것이었다. 자신이 이 코스튬을 버리지 않고 개어 구석에 놓아둔 것은.


  먼지만 쌓여가던 상자에서 문득 옷을 꺼내어 본 이유는 마을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제가 관 속에 누워 보낸 할로윈과 병원에서 보낸 할로윈을 지나 새로 맞는 할로윈이었다. 저마다 다른 얼굴을 빛내는 호박등은 조용한 마을에 떠들썩한 분위기를 띠게 했다. 대체로 나이 든 어른들이 많은 동네였지만서도 어디에나 어린애들은 있는 법이었다. 그 애들은 저마다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는 벌써부터 마을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키어런은 창문 너머로 그런 꼬마들의 미소를 응시하다 침대맡에 걸터앉았다. '할로윈', 망령들이 돌아다니는 날. 아주 우습게도, 정말로 '악마'나 '괴물'이 관을 열고 나와 살아 움직이는 날이 왔음에도 할로윈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저 축제로써 사람들에게 두근거림을 품게 했다.
 
 키어런은 시계를 흘금댔다. 저녁 6시 35분, 사이먼과 에이미가 제집 문을 두드리기까지 정확하게 25분이 남은 시간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그는 거울 앞에 섰다. 렌즈도 끼지 않고, 피부색을 두텁게 칠하지도 않은 채였다. 자신이 화려한 코스튬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던가, 즐거운 할로윈을 즐길 수 있는 적당한 나이를 지났다던가 하는 것을 떠나서 굳이 할로윈에 맞게 변장을 해야 할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섬뜩하리만치 창백한 피부와 녹아 흐르는 듯한 옅은 홍채, 그리고 일그러진 검은 동공은 굳이 분장을 하지 않아도 누가 봐도 호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바로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은 키어런의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심어 넣었다. 내 모습을 '할로윈 변장'급으로 생각해도 되는 걸까.
 
 사실 크게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었다. 자신은 어찌 되었든 현재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고, 새 삶이 주어진 것에 슬슬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적응해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여전히 '시선'이 신경 쓰이기는 했다. 사람들은 수군댈 것이 분명했으니까. '오, 저기를 좀 봐요. 저것만큼 사실적인 할로윈 분장이 있을까 싶군요. 분장이라는 말은 틀린 것 같네요, 저건 살아있는 악마니까요!' 라던가 '이걸 봐, 나 PDS 환자처럼 분장했어.' 같은 그런 자질구레한 말들, 혹은 비방들. 실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본 문구들이었지만, 그건 여러모로 키어런에게 영향을 끼쳤다. 에이미나 사이먼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만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꽤 진지하게 다가왔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시간은 일곱 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계의 종이 정확히 여섯 번을 지나 일곱 번을 향해가고 있을 때, 키어런은 현관문을 열었다. 그의 눈앞에는 깜찍한 별이 달린 검은 마녀 모자를 쓰고 검은 패티 코트로 부풀린 치마를 입은 에이미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사이먼이 서 있었다.

 "Trick or Treat! 오, 키어런. 아무런 분장도 하고 있지 않다니 너무 심심하잖아."
 "음... 어쩔 수 없었어, 에이미. 그러니까... 내가 '죽기' 이전에도 난 분장할 만한 걸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약간 아쉽긴 하지만. 좋아, 아무래도 상관없어. 넌 언제나 멋지니까. "
 "고마워, 에이미. 네 컨셉은 마녀인 거야?"
 "맞아. 예쁘지 않니? 내 깜찍한 필립이 골라준 거야."
 "예쁘다. 필립이 옷 고르는 눈이 있는 줄은 몰랐네. 그리고 사이먼은... 그냥 사이먼이네."
 "억지로 모터사이클 유니폼을 입히려다가 혼났어. 분명 멋있었을 텐데. 네가 좀 설득해봐, 키어런."
 "우리 모습 자체가 특별하지 않나?"

 정확히 자신이 예상한 그대로의 말을 하는 사이먼을 응시하며 키어런은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 눈썹을 까닥이는 사이먼을 보니 그를 설득하는 것은 역시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에이미를 이길 자신이 없었지만 사이먼에게 모터사이클 유니폼을 입힐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그는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오늘도 그때랑 똑같은 곳에서 파티인 거지?"
 "그곳이야. 이번에는 수의를 입지 않는다는 건 차이점이지만."
 "필립도 온대?"
 "당연하지. 사실 먼저 가 있는다고 했어. 그런 의미에서 나 먼저 가봐도 되는 거지, 내 사랑스런 남자들? 그럼 둘이 손 꼭 붙잡고 오길 바라."

에이미는 함뿍 웃음을 지었다. 살랑이는 치맛자락을 꼭 쥔 손이 사랑스러웠다. 과하게 고개를 숙이고 치맛자락을 들어올려 절을 한 에이미는 이내 총총거리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키어런은 미소 지었다.

 "그럼... 우리도 갈까? 아니면 나를 좀 기다려줄래?"
 "기다린다고? 아직 준비가 덜 된 거야?"
 "그건 아닌데, 옷장을 헤집어 놓고 내려왔거든. 이따가 집에 오면 정리할 정신이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같이 올라갈래?"
 "사양할 일은 없지."

 네가 가는 곳을 내가 마다할 리가. 사이먼의 얼굴에 꼭 그렇게 쓰여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키어런은 제가 시체만 아니었다면 뺨이 붉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이먼은 이것저것이 늘어진 그의 방을 슥 훑고는 물었다.

 "옷장을 헤집어 놨다고? 분장할 거리는 없다고 하지 않았나?"
 "물론 없어. 그냥 예전에 입었던 옷이 생각이 나서 꺼내봤거든. 아, 그런 표정 짓지 마. 내가 13살 때 입었던 옷이니까."
 "흥미로운데."

 아, 정말. 작게 혀를 찬 키어런은 무릎을 구부려 제가 할로윈 의상을 찾느라 꺼내놓은 것들을 갈무리해 상자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솜을 채워 근육처럼 보이게 한, 수퍼히어로 코스튬. 제 유년 시절의 추억에 마지막으로 눈길을 준 키어런은 마지막으로 그것을 개어 넣고는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마을을 뛰어다니던 그때, 자신은 무슨 생각을 했더라. 

 "수퍼맨이라. 아주 고전적이고 멋진 의상이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지만. 그러고 보니 사이먼, 당신은 어릴 때 무엇으로 분장하고 다녔어?"
 "남자애들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관문이지, 수퍼히어로라는 건."
 "그래서 당신은?"
 "어두운 도시의 검은 옷을 입은 수호자 행세를 하고 다녔지."
 "배트맨이라는 소리구나. 아주 고전적이고 멋진 의상이네."


 키어런은 사이먼의 말을 그대로 맞받아쳤다. 

 "배트맨이 절대적인 선은 아니라는 게 끌렸거든. 부모님이 살해당했는데도 히어로라는 점도 높이 샀지."
 "그건.. 그러네. 그런데 당신은 왜 아무런 분장도 안 하고 왔어?"
 "너와 같은 이유지. 나한테 의상이 있을 것 같아 보여?"
 "생각이 짧았어."
 "그거랑은 별개로,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 자체가 멋진 의상이지 않아? 아주 독특하고 소름 끼치지."
 ".... 그것도 그러네."
 "고개를 들어, 키어런. 우린 선택받았어."

 아주 멋지고 개성 있는 코스튬을 입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며 사이먼은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

 "자, 가자. '뇌'를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칠 시간이 왔어."
 
 그 말에 키어런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제 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지만, 역시 굳이 신경을 쓸 일도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제 곁엔 그 자체로도 멋진 남자와 보기에도 사랑스러운 베스트 프렌드가 있을 테니까.

 "그래. 우린 베스트 드레서가 될지도 몰라."

 그래도 호박 바구니는 들고 갈까? 키어런이 장난스레 웃었다.
살아있는 '악마'들이 돌아다니는 진짜 할로윈이었다. 즐기지 않는다면 분명 후회가 될 거였다. 둘은 음악 소리가 새어나오는 파티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