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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데샹바레] Tete-a-tete

[데샹바레] Tete-a-tete
:두 사람만의 이야기, 마주보고 앉아.

자신의 방에 찾아온 까미유의 표정이 평소와 묘하게 다른 것을 히카르도는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다. 모른 체하고 싶지만 이미 자신은 그 이유 또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무엇을 마시겠느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히카르도는 커피를 내렸다. 굳이 무엇을 마실 것인지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그는 차를 마시지 않으니까.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만 묘하게 찡그린 것 같은 표정을 한 까미유를 바라보며 히카르도는 그에게 낡은 커피잔을 건네고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설탕은 넣지 않았다."

뻗은 팔이 무색하도록 잔을 받아들지 않는 그에게 농담이랍시고 던진 말이었건만 까미유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효과는 있었는지 까미유는 잔을 받아들었다. 얼마 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까미유는 여전히 김을 내는 커피를 내려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히카르ㄷ.."

그러나 고심하여 꺼낸 말은 완성되지 못한 채 그의 입에서만 맴돌았다. 히카르도가 그의 말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말을 잘랐다고 화를 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히카르도는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까미유."

자못 진지한 표정에 까미유는 언제나 띄고 있던 미소를 지우고 물끄러미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가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히카르도는 말을 이었다.

"...어쩌다 읽은 동화의 엔딩에 너와 나를 대입하곤 했다. 까미유와 히카르도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우습고 유치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나의 꿈이었다, 까미유."
 
화를 낼 틈도 없이 그는 히카르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당황했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인지 히카르도가 눈치채고 있음을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까미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쥐고 있던 잔을 입에 댔을 뿐이었다. 오랜 기간을 함께 해서일까,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히카르도가 내린 커피는 달지 않았으며 항상 제 입에 맞았다. 처음에는 그저 쓰고 검은 쓰레기만 만들어 내던 그였는데. 

담담하게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히카르도는 제 목소리가 잔뜩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어쩐지 코가 시큰해지는 것 같아서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그들이 마주 보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임을 둘은 알고 있었다. 한쪽은 담담했고 한쪽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으나 둘은 모두 그렇게 느꼈다. 때문에 언제나 저돌적이고 급한 히카르도였지만 오늘은 유독 길고 길게 말을 골랐다.

"너와 내가 능력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면 어땠을까. 너는 개인병원을 내거나 의료봉사를 다니겠지. 나는 몸 쓰는 일 밖에 할 줄 모르니 가드 일을 하거나 계속 마피아에 남아있을지도 모르겠군. 밤에는 으레 사람들이 그러하듯 펍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일 거다. 그날의 불평을 하고 힘들었던 일을 말하고 웃고 즐기며 그렇게 늙어가는 삶. 재미있지 않나? 단순한 상상일 뿐인데 그런 삶이 현실이기를 이렇게 바라고 있으니 말이야."

파랗게 변해가는 손끝이 바들거렸다. 까미유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소파의 팔걸이에 식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분명히 떨어지겠지만 상관없었다. 고개를 숙인 히카르도의 양 뺨을 가볍게 잡아들고 시선을 맞춘 까미유는 언제나 주름져 있는 그의 미간에 입을 맞췄다. 히카르도는 작게 몸을 떨었지만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미간에, 코에, 뺨에 짧게 키스한 까미유는 마지막으로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윗입술을 깨물고, 아랫입술을 비집어 열었다. 얽히는 혀는 뜨거웠다. 그의 체온은 언제나 남들보다 조금 높았지만 오늘은 유독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타액이 섞이고 시선이 오갔다. 까미유는 자신이 토해낼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쏟아냈다. 그리고 히카르도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마셨다. 
셔츠가 흘러내렸고 바닥에 떨어졌다.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발에 채여 찻잔이 흔들리다 떨어지고는 소음을 내며 깨졌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낡은 나무바닥에 스며드는 커피나, 버석거리는 유리조각 따위에 눈을 돌리기엔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아까웠다.
몸은 달아올랐고 까미유는 히카르도의 목덜미를 핥았다.

히카르도는 까미유를 사랑했다. 까미유도 그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 깊이가 달랐을 뿐이라고 까미유는 생각했다. 오늘 밤이 지나면 히카르도는 시뇨리아 광장으로 향할 터였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둘의 마지막이겠지. 

내 카포, 내 친구, 내 가족, 내 연인 그리고 이용가치가 떨어진 나의 사랑스런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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